,글쓰기
글을 쓰기로 하고
무엇을 쓸지 생각하고
생각난 것들을 메모하고
메모하고
메모하고
길 가다가 책읽다가
버스에 앉아있다가
얘기하다가 화장실에 있다가
밥먹다가 자다가 눈떠서
또 메모하고 메모하고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전체적인 글 구성을 적고
또 다른 구성이 생각나면 또 적고
적고
적고
아침에 눈떠서 생각나면 적고
자극적인 문장을 서론 첫 문장으로 쓰고
그 문장을 연결한 문장들을 또 써보고
또 다른 서론을 써보고
써보고
그냥 갑자기 터져나오는 생각으로
아무 문단이나 생각나는대로 마구 써내려가고
메모하고 적고 써보고 써내려가고
마감날 전날에야
드디어 자리에 앉아 목차 구조도를 완성한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겠다고
마감 지킬 수 있겠다고
드디어 마감날
완벽했던 구조도를 눈 앞에 두고도
정작 첫 줄부터 아무 글도 생각나지 않았고
에라이 명언으로라도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각종 명언을 마구마구 뒤지고 뒤엎고
맘에 드는 건 따로 저장하고
맘에 드는 명언의 저자는 갑자기 생애가 궁금해져서
나무위키로 저자의 인생을 한 번 훑고
명언이 원래 만들어진 맥락과 원서가 궁금해져서
외국어로 검색하고 원문 복사해서 또 붙여넣고
저자가 쓴 다른 책도 궁금해서
나중에 읽어야지 교보 장바구니에 넣고 넣고
책 설명 읽다가 비슷한 서적 추천해주는 링크를
또 타고타고 들어가 맘에 드는 책 있으면
장바구니에 넣고 넣고 또 넣고
신나서 완전 빠져들어서
그렇게 명언 저자 스크랩 놀이 하다보면
글쓰기는 한 줄도 진도가 안나갔고...
뭐라도 쓰려고 보니 이미 새벽 3시고
잠이 쏟아지고 배도 고프고
차라리 잠이나 자자 누우면
정작 잠이 또 안와서 유튜브보고
아니 그럴거면 일어나서 다시 글쓰기를 하든가..
그건 절대로 하지를 않어 ㅋㅋ
마감날은 결국 지나고
자도 잔 것 같지도 않은 아침이 밝으면
그제서야 번뜩 눈이 떠지고
그제서야 똥줄이 타면서 자괴감이 몰려오고
그래도 광속으로 쓰면 오늘 중으로 쓸 수 있다고
정신나간 희망과 낙관을 놓지 않는다
부랴부랴 예전 써둔 서론에서 그나마 나은 것,
어제 봤던 명언작가의 말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어찌저찌 뽑아내고 잇고 이어서
첫 페이지가 겨우겨우 나오고
그 페이지를 읽고 읽고 또 읽고
수정하고 계속 수정하니
벌써 다시 새벽
겨우 한장 반 쓸까말까
도무지 졸려서 못해먹겠다
쓰러져자고
일어나면 해는 중천
어떻게든 오늘은 다 써서 보내야지
자리에 앉아서 읽어보니
그런데 어제 쓴 첫 페이지 맘에 안들어
다시 또 문단을 문장을 연결어를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렇게 고치면서 다시 더 연결해서
새로운 문단을 쓰고 소제목을 붙이고
문장을 하나하나 붙이고 붙이고
엉금엉금 페이지가 조금씩 늘어가고 늘어가고
쓰다가도 쓰고싶다고 생각나는 것들을
두서없이 아래에 다 적어두고 적어두고
정작 지금 쓰는 문단 다 쓰면
별로 연결이 안되어서
퀼트 조각보 남은 것 마냥
잘라내서 메모장에 붙이고 붙이고
뜨문뜨문 단어들, 문장들, 문단들
잘라내서 정리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쓰고 쓰고 또 쓰고
다시 하얗게 빈 페이지 하단에
조금씩 조금씩 써내려가고
그러다보니 하루가 또 가고
오늘은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야겠다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몸을 질질 끌고 바깥 공기를 쏘이고
집에 들어오면 피로가 몰려오고 몰려오고
그렇게 밤이 되고 새벽이 되면
기절해서 잠이 들고
깨어나면 이제 마감이 며칠 지났는지
기억도 안나고
해는 떠 있지만 시간은 모르고
모든 할일은 모두 기억에 사라지고
나는 오로지 이 글쓰기만 어서 다 써서
어서 보낼래 보낼래
그래도 한 장 한 장 쌓여서
벌써 네장이나 썼어 네장이나 썼어
두장만 더 쓰자 두장만
그렇지만 그 두장 더쓰려면
다시 첫 페이지부터 또 읽고 읽고 고치고
어색하고 이상한 말 또나와
또 바꾸고 문장을 지우고 추가하고
문단 순서를 앞으로 뺐다가 지웠다가
단어도 수정하고 수정하고
네 페이지 세 페이지 되었다가 다섯페이지 되었다가
이미 쓴 부분 겨우 다 넘어가면
그제서야 다시 새로운 부분
단어 문장 문단 소제목
또 느릿느릿 이어나가고 이어나가고
하루는 저물고 날은 어두워지고
비도 내리고 그러다 또 잠들고
눈을 뜨면 머리엔 글쓰기만
자 이제 마지막이다
한 장만 더 쓰자 한장만
마무리를 짓자
결론만 쓰자 결론만
오늘은 모든 걸 끝내자
끝내고 행복해지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밀린 일들
갑자기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밍기적밍기적 설거지도 하고
언제 마지막으로 씻었는지도 기억이 안나고
그 조금 남겨놓고
딴짓에 또 딴짓
그 딴짓들 계속 계속 하면서도
머리 속은 여전히 온통 글쓰기
그러고 자리에 다시 앉으면
창밖은 벌써 깜깜하고
엎치락뒤치락 문장을 바꾸고 또 바꾸고
미리 써둔 문단들 이어서 붙이고
연결하고 연결하고 또 정리하고 수정하고
소제목 한 바닥 또 쓰고 싶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통째로 지우고
그냥 이제 끝이 보인다
보인다 이제 마지막이다
다 끝났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한참 넘겨서
그저 멍하고 부끄럽고
이번에도 마감을 못지킨게 한스럽고
이런 쪽팔린 부족한 글을 보내는데
늦기까지 하다니 안부끄럽냐
스스로가 한심하고 또 한심해서
침대에 다시 쓰러져 끙끙대다가
그래도 보냈다 보냈다
포기하지는 않았다 중단하지는 않았다
해내기는 해냈다
엉엉 엉엉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그냥 쉬자
하고싶었던 것들을 하자
그렇게 슬슬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는 글쓰기 안할거야 안할거야
중얼중얼 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