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레 미제라블의 여성들

박새솜 2023. 2. 26. 22:15

레미제라블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나온다. 판틴, 코제트, 테나르디에 부인 그리고 에포닌.

작품의 대서사시를 이루는 각각 인물들이라 자세한 사연이 나오지는 않지만 한 발만 더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깝깝해질 정도로 슬프다. 꿈이 많았던 판틴이 아이를 임신하고 사랑은 떠나가고 그렇게 장발장의 공장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그 사이에 젖먹이를 데리고 집에서 쫓겨나 집 구하랴 일 구하랴 피눈물나는 생존 분투기가 없었을 리가 없다. 코제트는 또 어떤가.. 아무리 때 묻지않은 소녀로 다행히 장발장에게 입양되었다고 해도 아동노동과 학대로 가득찬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 예전에 읽은 에세이에서, 입양된 아이들 중 일부는 처음 새로운 집에 입양을 가면 식사자리마다 음식이 없을 것을 대비해 음식을 양껏 먹지도 못하고 숨기기도 한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도망자 홀아버지 장발장은 그 아픈 기억이 많을 코제트를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게다가 마리우스랑도 참 아름다운 커플이 되기는 하지만 정말 그렇게 동화처럼 행복하기만 할까?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뒤집기를 반복했는데 마리우스가 처형 안 당했음 다행...재산 몰수 안당했음 다행.. 만약 둘 다 발생했으면 결국 코제트는  판틴처럼 어머니의 인생을 반복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한편, 떼나르디에 부인은 탐욕의 온상으로 나오긴 하지만 만약에, 판틴이 버림받지 않고 코제트의 친아버지와 살림을 꾸렸다면 떼나르디에 집안처럼은 절대 살지 않았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다고 해도 그 시대에 혼전 임신은 양 쪽 집안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쫓겨났을 가능성이 다분할텐데 그렇게 빈털터리의 아이딸린 부부가 떼나르디에 부부처럼 돈에 미치게 되는 개연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혹시 또 모른다. 갑자기 천재지변으로 코제트네 부부도 몰락하면 테나르디에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이래 죽나 저래 사나 다 그냥 비극의 도가니탕이다.

마지막으로 에포닌.. 사실 에포닌 얘기하려고 글을 시작했다. 나는 늘 에포닌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어느 정도로 슬프냐면, 내가 만일 코제트와 마리우스같이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내 안에 에포닌에 대한 연민으로 결코 사랑하는 사람과의 해피월드에서만 살진 못할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람과의 사랑을 상상 속에서 꿈꾸며 살다가는 에포린. 떼나르디에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닐텐데 마리우스에게 용기조차도 못 내보는 스스로의 위치를 너무 잘 자각하는 것도 너무 슬프다.
게다가 그토록 미웠을 코제트였을텐데 코제트의 편지를 마리우스에게 전해주는 마음은 상상조차 못하겠다. 마리우스를 두고 희비가 엇갈린다는 점에서 에포닌은 코제트와 종종 비교되지만 어쩌면 에포닌과 가장 비슷한 사람은 사랑에 빠져들어 비극에 이른 판틴일지도 모른다. 헉.. 어쩌면 레 미제라블이.. 사랑은 이루어도 이루지 못해도 (장발장같은 부자 아버지가 없으면) 결국은 레 미제라블 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닌가 ㅋㅋㅋ 미친 생각ㅋㅋㅋㅋ

암튼  제목이 기가 막히게 다시 꽂힌다..레 미제라블.. 엄청나…생각하면 할수록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들. 몇백년 전 얘긴데 현실에도 너무 많아..답답하다 ㅠㅠ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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