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통독

230304 홍익문고

박새솜 2023. 3. 5. 00:07

내가 대의원으로 있는 협동조합 총회가 있어서 신촌에 갔다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홍익문고에 들렀다. 늦은 오후라 시간도 별로 없고 백신 부작용으로 속이 메스꺼워서 여러 책은 못 봤다. 아니 에르노 '사건'을 절반 정도 정독 후 통독, 23년 이상문학상 작품 홈 스위트홈 통독, 장하준의 한국자본주의에서 쌍용자동차 부분을 읽고나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오랜만에 펴들었다가 그냥 샀다.

'사건'은 임신을 알게 되고 임신 중단 수술을 하게 되기까지의 정말 생생한 의식의 흐름을 담았다. 와.. 진짜..생리를 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망한 화자가, 겨우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했는데 거기에 또 절망을 얹고 얹고 더하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현기증이 나서.. 중간부터는 그냥 스르륵 읽고 끝 부분만 봤다. 정말 그냥 상태묘사와 상황설명뿐인데도 기가 막히게 현실적이었고 화자의 좌절과 막막함, 끔찍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임신 중단이 의사도 처벌받는 시대였다. 화자는 임신을 이것이라고 지칭하면서 왜 같이 행위를 하고 나서도  자신의 몸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이 지점이 나는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면 국가 체제 자체가 자본주의와 불평등한 기회의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섞여있고 그 안에서 형성된 주체는 '임신 상태를 전혀 고려..는 커녕 상상조차 안해본 남성' 을 기준으로 한다. 개인 개념이 명확하기 때문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각 개인의 영역이 법과 제도로 규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신은 이 모든 개념을 다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 개인 신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주체와 소유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임신 후 태아와 그 태아를 임신한 여성을 개개인으로 판단하는 일 자체가 엄청난 폭력이다. 일정 기간동안 태아와의 공생 관계(!)를 유지한다면 임신한 여성에게 (남성에 비해) 개인으로서 자유같은 건 존재조차 그냥, 있기는 있었는지 싶도록 붕괴된다. 법치 제도 아래에 개인이자 시민으로 성장한다면 이 모순에 정말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분노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왜 이 사회는, 공교육은 그걸 다루지 않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아니 에르노의 이 작품의 묘사를 정말 괴로울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그럼에도 정말 인류 절반에게 끼치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감탄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사회과학 서적이야..

이상문학상 작품은 얼핏만 봐서 약간 불치병에 대해
다룬 것 같다는 것만 기억에 남고 뭐라 얘기하기 어려운데 작품 수상소감 첫 장은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대학생 때 알바하고 그러느라 학내 사안이나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일에 함께 하지 못해서 그들에게 늘 빚을 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이 그걸 조금이라도 갚았으면 좋겠다고 했던가..(그런 언급은 내가 작가와 같은 학교가 아니라도 위안이 되는 건 신기하지..)

장하준의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외국 자본의 먹튀를 다루면서 쌍차 얘기가 나왔는데 한 줄 요약하면.. 애초에 외국자본이 한국 기업의 주식을 구매해서 인수했다면 그들이 흑자를 보고 '먹튀'를 하는 게 그 기업에게도 노동자에게도 좋다는 것..쌍차를 상하이 자동차에 넘긴 것은 한국 정부와 은행이 허가한 모든 게 합법이었는데 기술을 넘기고도 흑자를 못 본게 문제였고 그러고 팔아치운게 (말하자면 먹을 못하고 튀만 한 것이;;) 비극이었다고 했다. 아...진짜 자본주의 자체를 뒤집어 엎지 않으면, 생산하는 노동자는 부품 이하로 만들어버리는 이딴 주주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대량학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게 왜 상식이 안되지?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 결국 장하준은 어차피 외국자본은 들어올 수밖에 없고 들어온 외국 자본은 흑자를 봐야 윈윈이 된다는 선에서 입장 정리한다. 하지만 나는 그 선을 넘지 않으면 한국자본주의고 세계자본주의고 해고라는 학살을 전제한 체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기술.. 우리 시대의 사랑이 물질적, 성적인 것에 찌들어 있음을 비판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나아가 세상 전부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할 수가 없다. 아니, 그 말이 도무지 고루한 말이 되지 않는 건 세상이 여전히 정말 이상해서인지도 모른다. 50주년인가, 55주년인가 기념 판본이라기도 하고 주저없이 샀다.

사랑의 기술을 집어 들었는데 점원 분이 홍익문고 앞 피아노의 비닐을 걷어냈다. 사실ㅋㅋㅋ그거 되게 치고 싶었는데 이때다 싶어서 또 철면피 깔고 치고 핳ㅎㅎ 세계과자에서 헬로키티 마시멜로랑 무알콜 호가든 한캔 천원에 사고 현대백화점에서 러쉬 허니키즈랑 장미꽃이랑 사고 혹시 고지혈 걱정없는 케익이 있나 했지만 그런 건 없어서 그냥 뚜레쥬르에서 블루베리 케익을 사고 본가로 향했다.

버스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노을진 해가 정말.. 판타스틱했다. 사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이지만 그래도 기억하기 위해서 열심히 찍었다. 와~ 진짜 이 맛에 한강 건너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 황홀함으로 충만했다가 다리를 다 건너자 무척 아쉬웠다..

엄마 생신 선물로 꽃을 샀다. 아, 내가 샀지만 너무 이쁘다 ㅋㅋㅋ백신맞고 헤롱대긴 했어도 꽤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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